엥겔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우라기 세상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남북갈등 이유로 한국에서 외면받고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분석은 다소 잔혹하다.
이들은 세상을 자본가와 프로레타리아로 구분한다.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건물주나 고용주) 자본가
몸뚱이만 가지고 있다면 (평범한 알바, 직장인) 프로레타리아 계급이다.
엥겔스의 본문을 조금 인용해 보자면
1. 부르주아지는 끊임없이 단결하며, 프롤레타리아트 안에서의 경쟁을 부추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기 위한 경쟁이다.
2. 과거의 노예들과의 유일한 차이점은 노예라는 사실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하루, 일주일 또는 일년 단위로 팔리기 때문이며
어떠한 소유자도 노동자를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으며
대신 노동자가 스스로를 팔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3.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지만, 언제나 그것이 팔린다는 것에 대해서는 보장받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경쟁이 있고, 이는 자본가에 의해서 끊임없이 조장됩니다.
4. 노동자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구조적 원인에 의해 '더 이상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동자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사회구조적 맥락은 버리고 모든 사태를 개인의 도덕척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을 '사사화'라고 합니다.
5. 노동자들의 도덕적 상황 (탈도덕화)
이들이 도덕적으로 부패해진 것은 심성이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가난한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사회적 전쟁 상태는 해가 갈수록 격렬해질 것이다.
노동자의 자리에 현재 평범한 직장인을 대입해 본다면
얼마간 씁쓸해 진다.
우리가 노예가 되기 위해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던가?
지금을 더 좋은 노예자리를 놓고도 경쟁하는 시대라 볼 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탈리아계급의 총봉기를 통해 사회구조가 재개편 될거라 확신했다.
노예의 생활은 너무도 처참했기에 무너지는 것이 바람직했으리라.
그러나 총봉기는 일어나지 못했다. 부르주아 세력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는 근본 심성구조는 '경쟁'이다.
경쟁은 근대적 시공간을 지배하는 기본적인 심성구조이며, '불안'이 이것에 맞물려 있다.
현대인은 경쟁하기에 불안한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마음대로 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더니티 미학을 이해하려면 기술, 공간, 행위자, 그리고 이것을 지배하는 경쟁과 불안을 살펴보아야 한다.
모더니티는 휘황찬란한 건물과 그 뒤편에서바스러져 가는 인간을 모두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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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추후 정리할 주제들
근대화를 정당화하는 논리 = '이윤의 추구'
금전욕, 권력욕, 색욕은 3대 죄악이였다.
인간의 파괴적인 정념(passion)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1. 강제와 억압
2. 자본주의와 결합해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환 (온화한 상업론...존로크/몽테스키외/데이비드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