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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이유
    카테고리 없음 2020. 4. 21. 14:17

    늙으면 죽어야지..

    너무 오래 살아 뭐해..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아서 이런 말을 가끔 들었다.

    여렸던 시절엔 눈물이 날 것 같고,

    왜 그런 불쾌한 소리를 하시나 걱정하기도 했다. 

    평생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하지만 대부분은 어떤 시기, 죽음을 경험한다. 

    꼭 사람 목숨이 아니더라도 모든 일은 마무리가 지어지는 법이다. 

    사람을 만나도 헤어지기 마련이고, 죽음도 비슷하다. 

    물론 현대과학이 발전해서 평생 살 수 있네 어쩌네는 논외로 하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었다. 

    우리는 왜 죽음 얘기만 꺼내도 경기를 일으킬까.

    나는 그 해답을 화장실에서 발견한다. 미쳐가는 걸까.

     

    (조금 더러운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변기에 앉아서 똥을 눈다고 가정해보자. 

    볼일을 보고 버튼 한번 누르면 똥은,

    휴지 몇장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진동하던 냄새와 함께.

     

    라떼엔 푸세식 화장실이 군데 군데 있었다.

    넓은 똥통 위에 나무 판떼기 두개를 겹치고

    거기에 똥을 싸는 획기적인 시스템. 

    그 밑엔 빨간 휴지, 파란 휴지를 든 귀신이 살았다. 

     

    지금의 화장실과 가장 다른점은

    똥이 엉덩이를 출발해 바닥에 쌓이는 질감, 소리, 냄새를 모두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들의 시각으로 매우 불쾌한 순간이다. 나도 다시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달에 한 두번 할아버지가 지게를 메고 똥을 푼다.  

    차곡차곡(?) 모아 밭으로 메고 가서 뿌린다. 

     

    봄에 심어놓은 쌀 낱알들이 가득한 땅이다. 

    싹은 똥을 먹고 무럭 무럭 자란다. 

    어느 덧 가을이 오면, 벼는 아이의 키만 큼 자라있다. 

    할아버지는 뿌듯하게 이를 한번 바라보고 난 뒤, 가족을 먹이기 위해 이를 거둬들인다. 

    아이는 그렇게 쌀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나면 똥을 싸겠지. 

     

    다시 현대식 화장실로 돌아가보면

    똥의 갑작스런 부재.

    사라지는 것.

    무.

    실존적 위태로움.

    이것이 현대식 죽음이다. 

     

    타노스가 인류의 절반을 그냥 '무'로 만들었는데 

    그 장면을 떠올려보자. 생각만해도 소름끼친다. 

    죽음이 이런 거라면 절대 겪고 싶지 않다. 

    변기에 떠내려가기 싫다. 

    그래서 우린 죽음을 무서워한다. 

     

    하지만 농부들은 알았다. 똥은 다시 싹이 되어 피어오른다는 것을. 

    죽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딘가로 흘러들어가 새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을. 

     

    똥 얘기로 시작해서 아름답게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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