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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상 사이의 반복카테고리 없음 2020. 5. 28. 15:28
고대 그리스는
자신들의 행동을 하나의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유기체로서,
자신이 지구의 주인공으로서 처음으로 행동을 개시한,
역사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첫 문명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세상이라는게 욕망이 지배하는 뜨거운 가마솥 같은 것이라
수많은 폴리스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자신들이 주인공이기에 모든 행동은 정당화 되었다.
전쟁이 보편적인 선
(시체를 땅에 묻어준다던지, 어린아이와 여자는 건들지 않는다 등)
기본적인 도덕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눈 앞에서 모든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그리스인들은
그 결과 허무주의 사상에 빠지게 된다.
모든 게 다 부질없다.
그 와중에 플라톤은 절대적인 선은 존재한다며 이데아를 찾자며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썻다.
이후 중세시대가 다가오고 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이 다시 구축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의미를 찾았고 내세가 아닌 외세에서의 행복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기독교 중심으로 세상이 굴러가다 보니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부합되지 않는 면이 많았다.
욕구가 터져나오면 세상은 지옥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무 심했다.
예술가들은 하루종일 그리스도 얼굴이나 그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피렌체를 기점으로 르네상스가 터져나오고
다시 인간중심의 세상, 근대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알다시피 제1차, 2차 세계 전쟁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나보다.
그 상황에 등장한 것이 과학과 제국주의를 어깨에 맨 자본주의.
물질적 풍요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시기가 지나고
열매가 모두 떨어진 지금.
사람들은 다시 허무주의에 빠진 듯 하다.
다시금 인간이 만들어낸 거지같은 현실을 집어 던지고
다른 세계관을 갈망하고 있다.
다시 기독교 위주의 세상이 오는건 말도 안되고
그 자리를 인터넷이 대신해주는 것 같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 보단 인스타그램속에서 좋아요 받으며 사는 게 훨 났다.
일상에서 좋아요 받기란 가뭄에 콩나듯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