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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경선 고민상담 - 프로의 마음가짐
    카테고리 없음 2020. 6. 4. 23:20

    저의 동기부여를 위해 대충 옮겨논 것이라 보기 힘든점 죄송합니다. 

     

     

    저의 고민은 왜 인간은 고통 받으면서 일해야 하느냐예요. 올해 27살, 직장 경력 2년차인 전 행정학 전공대로 공무원 시험을 보는 대신 평소 수업을 듣고 매력을 느꼈던 ‘리서치’ 직종을 선택했어요. 적은 보수에 업무 과다 업계지만 좋아하는 일인데 그게 뭐 대수야 싶어 노력해서 조사회사에 입사했죠. 그런데 취업의 기쁨도 잠시,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업무 자체도 그렇고, 직장내 분위기도 그렇고요. 직장인이라는 게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옷도 마음대로 못 입고, 팀장 눈치에, 클라이언트 눈치에, 동료들 눈치에, 인간관계도 서로 견제만 하는 분위기예요. 매일 기계적으로 타자와 클릭을 무한 반복하는 저를 보면 한심합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왜 공무원을 안 한다 했을까,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하는 일 별반 특출난 일도 없어요, 그냥 지시 받는 대로 움직일 뿐 별게 없어요. 직업을 갖는다는 게 곧 자아실현이라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자본주의와 학교교육, 그리고 대중문화의 허상 같아요. 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거지 뭐 딴게 있나 싶네요. 주위를 봐도 다들 회사 다니기 괴로워하는 것 같아요. 도대체 인간은 왜 즐겁게 일을 할 수가 없을까요? 소수의 예술가를 제외하고 보통 직장인 중에 행복하게 회사 다니는 사람이 있나 의심스럽네요. 제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꼈던 분야였는데 괴롭네요.

     

     

     

    먹고살기 위해 매일매일 전쟁터로 출근하기, 타협 아니라 프로정신입니다

    A 모든 회사원들이 고통 받으면서 일한다고 싸잡아서 얘기하는 건 당신이 그런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왜 ‘당신이’ 즐겁게 일을 못 하고 있는지만 말씀드리지요.

    첫째, 일을 통해 자아실현이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자아실현, 그거 꼭 지금부터 해 먹어야 하나요?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그리도 후져 보이나요? 전 원고청탁 받을 때마다 알량한 원고료에 매우 연연하는데요, 이런 말 종종 듣습니다.

    ‘글 쓰는 건 자아실현도 되고 본인도 쓰면서 즐겁잖아요.’ 한마디로 다른 가치로 배부를 네가 돈에 왜 민감하게 구냐, 이해 안 된다는 투인데요, 저야말로 이해 안 되는 건, 물리적으로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는 것, 그게 노동의 가장 현실적이고 숭고한 근본 아니던가요? ‘난 너무 유능하고 멋져’로 마음이 든든한 것보다 나와 가족의 배를 든든히 채워 주는 것, 그런 매일매일의 현실적인 생활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야말로 프로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말하자면, ‘직업을 가지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가 허상이 아니라 좀더 정확히는 ‘직업을 가지면 자아실현을 해야 된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허상이란 말이지요.

    특히 천직이라며 호들갑 떠는 성공한 사람들의 자아실현 무용담에 곧잘 사람들은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며 마음이 흔들리고 현혹되기 마련이지만 매스미디어를 통해 본 직업의 세계는 늘 보람 있고 희열에 차 있어 보이지요. 이러니 상대적으로 현실의 주변인들은 찌질하고 불행해 보일 수밖에.

     

    둘째, 일이 고통스럽도록 내버려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그 자체로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건 없다고 봅니다.다만 내 힘으로 원래는 생명력이 없는, 재미없던 일 속에서 어떻게든 재밋거리를 찾거나 만들어 갈 뿐이지요.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없다면 아마 어떤 일을 해도 잘 안될 겁니다.
    가뜩이나 현재 2년차라면 더는 막내 특혜도 못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부림당하기 시작하는 고통스러운 연차.당신이 지루한 데이터베이스만 만지면서 밑작업하는 동안 조사 업무가 가진 고유의 즐거움, 가령 폼 나는 보고서 쓰기 등은 명백히 윗사람들 차지가 되지요. 오랜 기간에 걸쳐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그걸 위해 다른 속세적인 기회마저 포기했는데 왜 보답으로 돌아오는 건 이런 지루하고 가치 없는 업무일까라고 한탄해 보지만, 시킨 대로만 하기 때문에 ‘별일’도 없고 재미도 없는 거겠지요. 단순업무는 말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유능한 이들은 몸소 항의적으로 보여 주지요. 천박한 회사 사람들과 악덕 클라이언트가 싫다고요? 자신과 안 맞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이 월급의 대가인데 그런 측면에선 주니어 시절에 그 스킬 익히는 게 차라리 도와주는 겁니다. 운 좋은 소수의 예술가들요? 돈 못 벌면서 망상과 자학을 오갔을 그들의 2년차 시절은 상상만 해도 안쓰럽습니다.

     

    ‘삽질’로 흔히 경시되는 ‘노력’이라는 거, 이거 나쁜 거 아닙니다. 특히 최소 5년차까지는 정신없이 뭔가를 이 악물고 해 보는 경험을 하면 근시안적인 ‘어떤 보상이 생겨’라기보단 인간으로서의 기본기가 다져져 우린 ‘터프’해질 수 있으니깐요.

     

    사실 2년차 직원에게 자아실현의 기회를 팍팍 안겨 주는 회사가 오히려 수상쩍은 것 아닐까요?벚꽃이 만개하는 이 계절에 춘곤증으로 더욱 지쳐 갈 우리 샐러리맨과 우먼들. 여느 때처럼 아침 출근길 만원 지하철 속에서 흔들리며 가다가 마치 벼락 계시를 받은 듯,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그날 하루 회사 ‘제끼고’ 훌쩍 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유혹을 받기 쉽겠지만, 이거 별로 안 멋있구요, 이거 그냥 땡땡이구요, 출근길이 괴로워도 이 악물고 말도 안 되는 주간회의가 고통스러워도 시부렁대면서 회사 역 앞에서 질끈 내리는 그 뒷모습, 이건 세상과의 비굴한 타협이 아니라 선한 성실함입니다. 진짜 고통은요 언제부턴가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공무원 시험’이 디비디 바비디 부가 되어 버린 현실이란 말입니다. 이건 허상을 넘어 집단주술이야 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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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확히 해야 할 것, 하나 더 있어요. ‘일’이냐 ‘취미’냐의 문제인데요, 미의식이나 자아실현 너무 좋아하다 보면 자칫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납득되면 돼’라는, 아니 이 젊은 나이에, 자기만족 중시형 가치관으로 ‘후퇴’하기 쉬워집니다.

     

    생각대로 안 풀리면 ‘노력한 과정이 더 중요해’라며 첨언하기도 하고요. 그것은 나름대로 훈훈하다면 훈훈한 가치관입니다만, 글쎄요, 난 왜 그게 포기 빠른 루저의 현실도피처럼 들릴까. 좋아하는 일을 내 일로 삼은 이상은, 무조건 그 일을 앞만 보고 성공시키는 게 당면한 과제 아니던가요? 예, 개인주의적 위로 코드의 자가해석 성공 말고요, 본연의 의미의 성공이요 - 그 일을 잘해내고, 타인의 객관적인 인정도 받고, 합당한 금전적 보상을 쟁취하는 그 기분 째지는 것 말입니다. 좋아하는 일로 성공해야만 굳이 좋아하는 일을 했던 의미가 살고, 깊은 충만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자기 자신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다 필요 없고 소박하게 나만 좋으면 되고 그냥 싫은 것만 안 할 수만 있다면 많은 것 안 바란다면, 에이… 그건 ‘일’이 아니라 ‘취미’죠. 쾌적하고 안전하며 남들과 경쟁하거나 성낼 필요도 없고 그 어떤 실망도 절망도 협박도 없는 취미의 세계. 최선을 다하거나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도 심지어 지 꼴리는 대로.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그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의 정체가 대체 뭐냔 말이죠.

     

     

    Q 아직도 부모님께 생활비를 의지하는 프리랜서의 삶, 그만두고 직장을 잡아야 할까요?

     

    저는 25살. 허울만 좋은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사실 프리랜서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제가 했던 일들은 매우 적습니다. 부모님 도움 없이는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요. 사실 3년 전만 해도 제가 그림을 직업으로 삼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기에 디자인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겠거니 했죠.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때 일러스트공모전에서 조금은 과분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의 그림은 좋아.” 항상 고만고만하게 보일 듯 말 듯 살아왔던 저의 삶에서 처음 받게 된 칭찬이었어요. 저는 “그림을 잘해야지. 더 인정받고 싶어”라는 생각에, 전공을 접어두고, 일러스트에 집중했죠. 그러면서 아는 선배나 교수님을 통해 작은 일러스트 작업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저는 계속 그림을 일로 삼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에도 저의 삶은 대학생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부모님께 생활비를 의지하고 있는 제 자신이 싫어집니다. 예전에 제 그림을 좋다고 했던 사람들의 칭찬도 이젠 빈말 혹은 위로같이 들리며 제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집니다. 취업하는 동기들을 보면 나도 그림은 접고 직장을 구할까 싶고요. 저는 계속 이렇게 보이지 않는 꿈을 좇아도 되는 걸까요? 계속 꿈을 향해 꼼지락거리다 보면, 원하는 것을 잡을 수 있을까요?

     

     

    A 길을 가다가 벽 앞에서 딱 막혀버린 그 기분. 자신이 갈망했던 스스로의 이미지와 현재의 모습이 갭이 클수록 좌절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꿈을 이루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공모전 수상 하나로 잘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위치까지 스트레이트로 길이 이어지는 운 좋은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고로 ‘내가 가졌던 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감이 아니었을까’ 혹은 ‘이 정도 상황을 봤으면 답은 나왔다.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라며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은 해보지만 포기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고민하는 거잖아요.

     

    ‘벽’의 대부분은 인간의 불안과 고민이 제멋대로 크게 쌓아 올린 것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두렵고 고민하는 만큼 그 상상 속의 벽은 커져만 가지요. 그 벽이 허물어지려면 내가 생각과 고민을 멈추고 요리조리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꿈틀꿈틀 움직여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의 길이 막혔다고 해서 좌절하기엔 매우 아까운 상황인 것 같아요. 왜냐, 아직 당신은 지금 제대로 링 위에 올라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려는 것이니까. 엄밀히 말해 교수님이나 선배가 준 일은 일이 아닙니다. 연고가 없는 사람이 줄 때부터 프리랜서의 일은 시작되는 거지요. 남들이 해주는 그림칭찬이 빈말인지 위로인지 가늠해본들 마찬가지로 별 의미 없어요. 프리랜서의 세계에선 ‘팔리는’ 그림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과거의 영광과 굴욕은 이제 겨우 밑그림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상상했던 이미지와의 갭에 매이지 않고 새롭게 행동을 일으키면 움직인 만큼 그 벽의 ‘틈’이 보이기 시작하겠지요.

     

     

    한편, 행동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쪽팔리는’ 일입니다. 양반이나 선비가 아닌 장사꾼이나 머슴마냥 이리저리 분주히 벽 주변을 훑어보면서 어디 허물 데가 없을까 왔다 갔다 해야 하니 폼이 날 수가 없지요. 내 꼴이 우스울 수도, 무시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폼이나 쪽팔림 역시도 기웃거리는 아웃사이더의 위치에선 아무 의미 없는 자의식일 뿐입니다. 프리랜서의 세계에선 일단 지금 일을 가진 현역의 ‘인사이더’가 압도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서 있으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이미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가 하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적어도 기존의 그들보다 30%는 더 확연한 가치를 주지 못하면 기존 포지션은 꿈쩍도 안 할 겁니다. 후발주자가 일을 쟁취해내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에요. 진열장 너머로 침 흘리며 투덜댈 여유조차 없습니다. 지난 월드컵 경기 때 단 한번도 출전 못한 축구선수들을 보세요. 똑같이 훈련하고 똑같이 따라다녀도 1군 선수들 중에 누가 다치기라도 안 하면 기회조차 없지요. 하지만 거기서 낙담할 순 없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나 여기 있소’라며 치고 들어갈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기회를 잡으니까. 당신은 틈나는 대로 대체 불가능한 실력을 키우고, 나를 어필하고, 롤모델을 만들고, 잠재적 클라이언트의 가려운 부분을 알아내고, 당장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정말 작고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나가며 조금이라도 ‘인사이더’가 돼야만 합니다.

     

    어쩌면 프리랜서 일의 본질이라 하는 것은 ‘내게 적합한 것이 뭘까’ ‘난 정말 뭘 하고 싶은 걸까’라며 적성이나 재능을 묻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떠나 내가 부탁을 받았으니 어쨌든 최선을 다한다,가 스타트라인이 아닐까요? 잡일이든 험한 일이든 어떻게든 내가 일할 수 있는 장소를 많이 만들어서 부탁받은 일은 기분 좋게 성실히 하는 것, 그러다가 ‘아 나는 이런 종류의 일을 잘할 수 있구나’를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 더 나아가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의 개념도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확장되는 즐거움을 얻기도 하지요. 그렇게 사람들의 일 의뢰가 점점 늘게 되면 그때 가서 그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나가는 것,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의 프리랜서가 가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출처 :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http://www.hani.co.kr/arti/SERIES/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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